'독박 돌봄' 지쳐 지적장애 동생 숨지게 한 오빠..."범행 인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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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9.14. 오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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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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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여동생 혼자 돌본 오빠…"사회도 함께 책임졌다면" 목소리도]

지난 7월24일 새벽 "여동생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친오빠 A씨(36)였다. 그가 말한 주소로 가니 한 여성이 화장실 욕조에 숨진 채 누워 있었다. 뼈만 앙상했다. 숨진 여성은 A씨과 단둘이 살았다. 경찰은 A씨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현장에서 체포했다.

검찰은 A씨를 학대치사와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여동생을 굶겨 숨지게 했다는 혐의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안동범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A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여동생을 최소 1년 넘게, 상습적으로 굶겼다. 체벌 목적이었다. 여동생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지적장애가 있었다. 2020년 7월 어느날 여동생은 옷에 실수를 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A씨는 주문한 김밥을 여동생이 못 먹게 했다. 굶김은 이런 식으로 반복됐다. 여동생은 영양결핍으로 사망했다. 시신에 폭행 흔적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의학계에 따르면 음식을 전혀 안 먹고 8~12주가 지나야 영양결핍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사는 "피고인은 자기 보호를 받는 피해자를 방임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A씨는 법정에서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변호인과 맞춘 시나리오였다. 혐의는 명확했고 재판의 목적은 유무죄를 가리는 게 아니었다. 첫 공판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형량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A씨는 "그런데"라며 "(동생을 돌보며) 나도 점점 살기가 싫고 동생이 실수하면 점점 다 하기 싫어졌다"고 말을 이었다.

A씨는 변호인과 사전 협의하지 않은 진술을 즉흥적으로 했다. A씨는 "나도 가족을 버리고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혼자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A씨 친부는 자녀들이 어릴 적 가족을 떠났다. 친모는 7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때부터 지적장애인 동생 돌봄은 A씨 몫이었다. 취직은 할 수 없었다. 언젠가 A씨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은 현관문을 열고 나와 아파트 복도에서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A씨는 "또 그럴까 봐 동생을 놔두고 어딜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여동생을 왜 장애인 거주시설에 맡기지 않았느냐'는 판사 질문에 A씨는 "사회복지사와 (시설 입소를) 얘기하던 도중 아버지가 와 '사지 멀쩡한 가족이 있는데 왜 시설에 보내느냐'고 했다"며 "그날 처음 만난 아버지의 그 말에 화도 났지만, 어쨌든 동생을 키우려 했다"고 했다.

A씨와 여동생은 기초생활수급 등을 받고 살았다. 그러다 A씨는 인터넷에 '알뜰폰 계정을 만들면 돈을 준다'는 광고를 보고 따랐다. 계정 10개를 만들고 20만원을 받았다. 보름 전 A씨는 자신이 만든 계정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다는 경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있다.

A씨는 여동생 죽음에 관해 "제가 무기력한 것, 제가 동생을 못 돌본 잘못이 있다"면서도 "하" 한숨 쉬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만의 문제로 몰아선 안돼…사회도 돌봄 책임졌어야"


/사진=뉴스1
법조계에서는 A씨가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예상이 우세하다.

SOS 형사전문센터 소속 이민 변호사는 "여동생 사인이 영양결핍인 것을 보면 학대 범죄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며 "(독박 돌봄 등) 상황을 감안해도 A씨 범행이 비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판단은)재판부에 달려있지만 집행유예은 안 나올 것 같고 징역형의 중형이 예상된다"고 했다.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동생 죽음의 책임을 A씨만의 문제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부모회) 대표는 "A씨를 두둔하기 어렵지만 A씨만의 문제로 몰아갈 수도 없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김 대표는 "장애인 돌봄이 가족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 안다"며 "부모회에는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발달장애인 자녀가 무인점포에 가 3만4000원어치 물건을 훔쳐 300만원 합의금을 물어준 회원도 있다"고 말했다. 해당 회원은 사직을 고민 중이다. 김 대표도 7년간 다녔던 은행에서 퇴사했다.

김 대표는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은 보통 우울증이 있다"며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돌봄 책임을 A씨 개인에게만 전가한 것은 잔인한 일"이라며 "사회가 여동생을 함께 돌봤다면 이런 비극은 안 일어나지 않았겠나"라고 했다.

한편 A씨 선고는 오는 2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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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출입을 마치고 산업부에 왔습니다. 중소기업을 맡습니다. 부서를 옮겼지만 어떤 제보든 주시면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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